역시 사람은 큰 욕심이 없어야 일이 풀리는걸까?ㄲㄲ 10월 14일날 <부산 핫트랙스 MIROTIC 팬사인회> 공지가 떴을 때 부터, 15일날 앨범을 사고 18일날 당첨자 발표가 날 때 까지 나는 정말 꽤나 마음을 비우고 있었던 것 같다. 당첨되길 바라지 않았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당첨 되도 보러 갈 거였고 당첨 안되도 보러 갈 거 였으니까. 나한테 우선적인 것은 8개월만에 오빠를 본다는 사실이었고, 사인 받는 것은 그냥 부수적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워낙 당첨운이 없는지라 기대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고.
10월 14일 밤 10시 쯤? 알바 하고 있는 중에 친구에게 부산 팬사인회 소식을 문자로 전해들었다. 쓰레기를 가득 실은 카트를 끌고 혼자 쓰레기장 가는 길에 그 문자 받고 진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곤 단발마의 '악!'..... 맞은편에 스타벅스 매장이 있었는데 '악!'소리에 일순간에 손님들의 시선이 나에게로..(ㅋㅋㅋㅋㅋ) 가? 말아? 생각 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그냥 무조건 가는거.
응모 기간은 14일부터 17일까지였지만 행동을 지체할 순 없었다ㄷㄷㄷ 그래서 15일날 바로 부산으로 갔당. 창원에서 부산까지는 버스타고 50분밖에 안 걸리는 어찌보면 가까운 거리지만서도, 서면 핫트랙스까지 혼자 가기엔 너무 외로울 것 같아서 부산에 사는 친구를 대동. 4시 쯤 서면 핫트랙스에 도착해서 점원에게 멋있게 다가가 '동방신기 음반 다섯장 주세염.' B버전 다섯장 값인 65,000원을 카드로 So Coooool 하게(라고 쓰고 울면서 라고 읽는다.) 긁고, 드디어 응모권 다섯장을 받았다. 297, 298, 299, 300, 390..... 응모권을 적을 수 있게 마련된 테이블로 가서 이름을 적고, 전화번호를 적었다. 응모함에 넣기 전에 다섯장을 손가락으로 부여잡고 기도하는 것도, 콧기름을 바르는 것도 잊지 않고! 그 걸로도 부족할 것 같아서 응모권 뒷면에 19861215♡ 까지 일일히 적어서! 있는 에너지 없는 에너지 다 불어 넣어서! 사랑을 담아서!..... 옆에 서서 기다리던 친구가 '야..그만하고 이제 좀 일어나지?'라고 정색을 안 했더라면 한시간은 더 그러고 있었을 것 같다능.
응모권을 넣고 온 후부터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다가온, 당첨자 발표가 있었던 18일. 다섯시 쯤 당첨자 명단이 떴고, 명단에 내 응모번호와 내 이름, 내 전화번호가 있는 걸 보는 순간, '꺄! 당첨 됐어!' 이런 느낌이 아니라 '우와...' 이런 느낌이었다. 명단 뜨고 나서부터 축하 문자와 축하 전화 크리.. 통화 하고 있는데도 계속 문자와서 진동땜에 볼살이 드르르르ㅋㅋㅋㅋㅋ 근데 당첨 됐는데도 난관에 봉착. 다음날인 19일에 서면 핫트랙스에 번호표 교환을 하러 가야하는데, 내가 부산에 갈 수 없는 상황인거다. 고민하다가 ㅈㅎ를 들볶아서 창원까지 오게 만들고..(ㅋㅋㅋㅋㅋ) 그 날 저녁에 바로 알바하는 곳으로 와 준 ㅈㅎ에게 내 응모권, 구매 영수증, 민증이랑 블루베리 베이글, 핫초코, 차비를 쥐어주면서 사랑한다고 외쳤지. 지금도 사랑한다 ㅈㅎ야.
번호표 교환이 있었던 19일. 새벽 세시에 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7시에 일어나, 서면 핫트랙스에 가서 23번 번호표 받아다 준 ★승리의 윤ㅈㅎ★ 날 죽일거라고 했지만 빈 말인거 알아. 사랑한다 ㅋㅋㅋㅋㅋ
그리고 대망의 20일은 왔지.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마치자 마자 바로 터미널로 가서 부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부산으로 가는 길에는 오빠가 부른 노래들로만 무한반복재생. 그렇게 여차저차 하여 애초에 사인회 장소로 예정되어 있던 동성중학교에 도착했다. 예상했던대로 질서 엉망이고, 당일날 사인회 4시간 앞두고 사인회 장소 변경되는 정도?ㅋㅋㅋㅋㅋ 다시 장소는 서면 핫트랙스. 오빠한테 할 말은 생각도 못 해놨는데 벌써 사인회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문득 두렵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할 말이 너무 많기도 하고, 할 말이 너무 없기도 해서.. 사인회 할 장소를 못 정해서 우왕좌왕 하던 스텝들이 결국 핫트랙스 주차장에 판을 펴기로 하고, 7시에 입장을 했다. 근데 입장하자 마자 '사인 받으신 당첨자 분들은, 사인 다 받고 나면 바로 나가주세요.'라는 소리에 어이 상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뒷 번호 받아서 싸인 늦게 받더라도 오빠 오래 보는게 낫겠다며. 아니, 차라리 당첨 안 되고 낙첨자들 무리에 껴서 한 시간동안 오빠 얼굴 보는게 낫겠다며-_- 당첨자들은 당첨자들대로 흥분하고, 낙첨자들은 낙첨자들대로 짜증내고, 스텝이나 서포터즈들은 그들대로 또 화를 내고. 엉망 진창.. 당첨자들 중 좀 드센 몇몇이 항의해보려고 들었는데,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웅성웅성 하다가 시작이 가까워져 오니까 다들 체념하는 분위기.. 애들 숙소 가드하는 경호원들도 와 있고, 전경들도 닭장차 두 대만큼의 인원이 와 있어서 무서웠다..(ㄷㄷㄷ)
당첨자 라인에 줄을 서고, 서포터즈들이 포스트잍을 가지고 다니며 이름을 적어서 붙여주고, 음반에서 자켓을 꺼내 미리 들고 있으라고 공지를 했다. 시간이 정말 가까워져 오자, 나는 답지않게 화장도 고쳐보고, 향수도 한 번 더 뿌려보고, 옷도 한 번 더 단정히 하고, 머리도 한 번 더 빗고, 가디건 소매에 녹음기도 숨기(.....)는 일련의 작업들을..(ㅋㅋㅋㅋㅋ)
시작 시간이 다 되어 초조해질 즈음, 오빠가 입장할 수 있도록 길을 터 놓은 곳으로 경창오빠의 모습이 보였고, 나는 침을 삼켰지. '옳거니, 왔구나.'..... 오빠가 오셨다. 긴 회색 머플러와 보잉 선글라스로 한껏 멋을 낸 밀키와 함께 오빠가 오셨다. 멋드러진 깜장 정장을 입고! 오빠가 오셨다ㅠㅠ 말쑥하게 안경도 쓰고 오시고 말이지.. 8개월만에 만나는 감격에 울컥. 마치 고3 때 오빠 처음 봤을 때 처럼 소녀가 된 심정으로 나도 오빠를 환영했지. '구어ㅗ어ㅜ어ㅗ유ㅓ오ㅓㅜ!!!!!!!!!!오빠!!!!!!!!ㅠㅠ' ㅋㅋㅋㅋㅋ 한 마리 오크처럼. 짐승처럼.. 오빤 부산 팬들을 만나게 되어 너무 기쁘다며, 즐기다 가실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인사를 하셨다. 저희도 기뻐요. 오빠, 드센 경상도 아낙들의 모습을 즐기고 가세요. 겁먹지 마세요. 잡아먹진 않아요.
인사가 끝나고 준비된 자리에 나란히 앉은 밀키와 오빠. 먼저 기념 사인을 몇 장 하시고, 스텝들의 진행에 따라 본격적인 사인회가 시작되었다. 내 차례가 올 때 까지 그냥 멍하니 오빠만 봤다. 오빤 활기차게 인사도 해주시고,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기도 하고, 예쁘게 웃어주시기도 하고, 사인이 끝난 후에는 상냥하게 눈도 맞춰 주시더라. 날개만 없었지 아주 천사라니까, 천샤ㅠㅠ 오빠 모습 좀 더 지켜보다가 한 180번대에 사인 받았음 좋았을텐데, 오빠 좀 보고 있다보니 벌써 내 차례가 되어 있었다. 가드의 안내(?)를 받으며 밀키앞에 서서 손에 쥐고있던 자켓을 내밀었다.
밀키: (샤방샤방) 안녕하세요~
와칭샤: (후덜덜) 안녕하세요~
밀키: (이름 적힌 포스트잍 보며) 유진!
와칭샤: (화색+/////+) 네!
밀키: (소리없이 웃었다)
와칭샤: (대뜸 한다는 말이) 오빠 피곤하시죠~
밀키: (사인하는 중) 아니요~ 괜↗찮↗아요~
와칭샤: (왜 되물은거지?-_-) 괜찮아요?
밀키: (또 소리없이 웃었어)
와칭샤: (무슨 말 할지 고민하다가ㅠㅠ) 건강하세요~
밀키: (자켓 건네주면서) 고마워요~
와칭샤: (두 손으로 자켓 받으면서) 운전 조심하세요~
밀키: (고개 푹 숙여 인사하면서) 네에~
밀키와의 짧은 만남을 음미할 새도 없이,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오빠 앞에 날 끌어다 세운 가드.
와칭샤: (사시나무ㄷㄷㄷ) 안녕하세요~
오빠: (비루한 내 안구에 눈을 맞춰 주셨어) 네~ 안녕하세요~
와칭샤: (나 갑자기 이 말 왜 했지?-_-) 오빠, 샤퐈들은 시아준수만 믿고 가요 진짜~?
오빠: (좋아하시더라) 으항항. 네헤ㅔ에ㅔ~
와칭샤: (이미 머릿속은 백지장이 되었고도) 건강하세요~ 운전조심하세요~
오빠: (사인하는 중) 네에~
와칭샤: (나란 사람은 오빠한테 이 말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 마냥) 오빠 진짜... 건강하셔야되요~
오빠: (그저 눈을 마주하곤 자켓을 건네며 웃어주셨어ㅠㅠ)
와칭샤: (뒤돌아서면서, 오빠 사인이 내 엄지손가락에 묻어 번진 것을 보고) 헐..
오빠: (긁적) '_') ;............
운전 조심, 건강 조심.. 평범한 얘기들만 얼기설기 엮어놓고 사인회장을 나오는데, 알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오빠에게 전하기 위해 오래 준비해왔던 말들을 전하지 못함이 이토록 애통할 줄이야. 원래는 <오빠, 제 이름이나 얼굴 기억해 달라는 건 바라지도 않구요. 제가 지금 방송 작가 되려고 공부중이거든요. 그 때 되서 오빠 찾아가거나 섭외하면, '아~ 싸인회 때 왔었던 걔구나! 작가 될거라더니 진짜 됐나보네. 기특하네.' 이렇게 생각만 해주세요. 오빤 늘 열심히 하시니까 말 할 필요도 없고 저희도 오빠 따라 늘 열심히 할테니까, 우리 같이 가요. 그냥 다 고마워요. 오빠, 운전 조심하시구요.>라는 말을 하려고 수첩에 적어놨었는데. 빠르게 말하려고 스피치 연습까지 했었는데.(ㅋㅋㅋㅋㅋ) 다 모자란 내 탓이다.
나는 워낙 좀 다혈질이라 흥분도 빨리 하고, 또 그만큼 흥분이 빨리 가라앉아서 허한 기분을 자주 겪기도 한다. 그래서 콘서트나 공연을 다녀오고 나면 며칠씩이나 마음을 앓고는 하는데, 사인회장을 나오면서 딱 그런 기분이 들었다. 어줍잖은 소리 하지 말고, 테이블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 머루같은 까만 눈동자랑 찐하게 눈이라도 맞추고 올 걸. 계획대로 한복입고 가서 큰 절을 하든지(그 날도 한복 입고 와서 큰 절 한 고딩언니가 있다고 하더라마는), 뚜비 탈 빌려 쓰고 가든지 해서 오빠에게 빅와라이를 드리고 왔어야 하는건데! 말도 안되는 죄책감이 들었다, 우습게도.. 결국 되지도 않는 안부인사나 실컷 하고 왔지만, 내 마음 100 중에 1이라도 오빠에게 전달되었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고맙다는 말은 꼭 하고싶었는데. 우째 그걸 까묵고 왔지? 어휴. 늙으면 죽어야 돼. 너무 오래 살았다니까.
나는 가끔 나와 오빠가 단지 팬과 가수사이일 뿐임을 잊을 때가 있다. 이 날도 그 현실을 잊고, 사인회같은 것으로 밖에 오빠와 닿을 수 없음을 한탄하며 눈물을 짤끔 흘렸지. 그 땐 서운함에 마음이 아주 짜그러져 있어서 그런 현실 밖에 안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슬픔을 딛고 일어서니 오빠에게로의, 내 목표에게로의 한걸음을 성큼 내딛을 수 있는 힘이 생긴 것도 같았다. 열심히 하자. 오빤 아직 나를, 우리를 잘 모르시니까 우리가 어서 큰 사람이 되어 오빨 찾아가야지. 그리고 오빠한테 잘했다고 칭찬 받아야지. 우어어, 나는 샤퐈다.
결론은.. 오빤 내게 병을 주시지만, 약도 주신다. 이번에도 한참을 앓았지만, 결국 내 앓음에 비해 오빠가 너무 좋은 약을 주셔서 또 이렇게 벌떡 일어나서 아무 일 없었던 것 처럼 다시 산다.
하.. 오빠, 이 귀신같은 사람. 좋은 추억이에요. 고마워요,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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